RESEVATION

스타베팅 이용후기

작성자 : 리얼 l 등록일 : l 조회수 : 71

“알았다. 그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마.” “네. 차라리 솔직해지세요. 솔직하게 말해요.” “그게 나을까?” 방금 전까지 우물거리던 황제는 내 말에 급하게 몸을 바로 세웠다. “네. 그게 나을 거예요.” 나는 그가 채워 준 와인 잔을 다시금 비워 냈다. “알았다. 이제…… 최대한 솔직해 보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이 주제에서 빨리 넘어가고 싶었다. 우습게도 자꾸만 가슴이 아파 와서, 내가 이 사람에게 가지는 감정이 그와는 너무 다른 감정인 거 같아서 내 마음을 숨기고 싶었다. 술이 들어오고 나서야 느껴졌다. 그와 이야기하고, 그가 하는 말들을 들으며, 그가 다른 이를 옆에 두면 힘들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리안드로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랑하지 않겠노라 자부해 놓고. 나도…… 참 웃기네.’ 그래서 최근에 이리도 기분이 다운된 거였구나. “몸은 괜찮나.” “괜찮아요.” 그러니 빨리 놓자. 어차피 지독한 짝사랑일 뿐이다. 이루어질 리 없는 그런 짝사랑. 이제야 내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차피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 그에게 엄청난 여성 혐오를 가져다줄 정도로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새순이 돋는 것처럼 자꾸만 희망을 가지려는 내 마음을 발로 짓밟았다. “그보다,” “응?” “테슬로는 마탑에 처분을 맡기도록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런가.” “네. 이야기가 그렇게 되었어요.” “괜찮겠나. 샤넨시아가 당한 일 때문에 아직 화나 있던 거 아니었나.”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그래도 처벌의 강도가 달라질 텐데, 정말 괜찮은 건가.” “네.” “왜 그렇게 결정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아뇨.” 그제야 리안드로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난 후 와인을 입에 털어 넣었다. “오늘은 잘 먹었어요. 여러모로 고마워요.” “아니다.” “그러면 저 먼저 들어가도록 할게요. 조금 피곤해서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술에 취해 내 마음을 고백하는 불상사는 있어서는 안 되니까.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침실 문을 열었다. 아직 리안드로는 나가지 않았다. 그가 어떤 표정으로 있는지 궁금증이 몰려왔지만, 난 애써 참아 가며 침대로 향했다. ‘괜찮아. 잘했어.’ 금방 내 감정도 좋아질 거다. 금방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다. 짝사랑은 언제나 짧았으니까. 난 스스로를 다독이며 침대에 누웠다. 잠들어 있던 아이는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오자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언니야…….” “응, 샤샤. 언니 때문에 깼어?” 샤샤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고개를 파묻고 있는 탓에 잠이 든 건지, 다음 말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샤샤?” 그래서 살짝 물었는데 샤샤는 나를 더 꽉 껴안았다. “언니야가 없어서. 그래서…… 언니야도 샤샤가 싫어서 가 버린 줄 알고 눈물이 났어요…….” “아니야. 샤샤 곁을 떠날 일은 없어. 언제까지고 우린 함께야. 알았지?” 오전에는 괜찮았던 아이가, 밤에는 두려운 건지 아기처럼 칭얼거렸다. “우웅…….” “아까는 언니 없어도 된다는 듯 잘 놀더니.” “그건…… 할 게 있어서 그랬어요. 그리고 그때는 돼지가 있으니까, 언니가 잠깐 없어도 괜찮았어요.” “그랬어?” “응…… 돼지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하지만 밤에는…… 안 돼요.” 난 샤샤의 등을 보드랍게 매만졌다. ‘나한테는 샤샤뿐이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샤샤뿐이다. 샤샤만을 바라보고 이곳에 왔고, 샤샤만을 위해 살 거다. 노아 대신 샤샤에게 내 남은 인생을 모두 바칠 거다. 사랑 따윈 필요 없다. 그런 감정은 내게 사치일 뿐이다. “우리 샤샤. 언니가 앞으로 밤에는 항상 같이 있을게.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평소라면 냉큼 대답했을 샤샤의 몸이 조금씩 떨려 왔다. 어디가 아픈 건가 싶어서 급히 몸에서 샤샤를 떼어 내고 아이를 살폈다. 달빛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보이는 샤샤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어 보였다. “샤샤야, 왜 그래?” “언니야…… 나 무서워요…….” “응? 뭐가 무서워. 언니한테 말해 봐 봐.” 샤샤는 한참 동안이나 말도 하지 못하고 잠도 못 자고 진정하지 못했다. “괜찮아. 말해도 괜찮아.” “나…… 너무 행복해서 무서워요…….” “그랬어……?” “응……. 항상 나랑 친하게 지내면…… 누군가가 다치곤 했잖아요……. 강아지도 죽어 버리고…… 그래서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요.” 난 샤샤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토끼들도 멀쩡하고 아무도 다친 사람 없는데?” “그래도…… 언제 다칠지 모르는 거잖아요. 기분이 너무 좋다가 문득문득 불안해져요.” 아이의 지독한 불안감,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드는 불안감. “괜찮아. 언니가 그런 일 없게…… 해 줄게. 우리 샤샤는 걱정할 거 없이 지금처럼 행복해하면 돼. 알았지?” “우웅…….” 아이는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나는 아이가 괜찮아질 때까지 다독여 주고 또 다독여 줬다. ‘샤샤, 네가 잠이 오지 않으면 밤새 등을 토닥여 줄게. 네가 무섭다면 내가 칼을 들고 너의 앞에 있는 걸 모두 없애 줄게. 너의 밤이 지나칠 정도로 어둡다면, 내 몸을 태워서라도 불이 되어서 그 길을 밝혀 줄게. 그러니까 너무 아파하지도 말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행복해야 해.’ 언니가 진실을 밝혀 줄게. 샤샤. 마음을 담아 아이를 달래고 또 달랬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켄이 나를 찾아왔다. 아직 샤샤가 일어나기도 전의 시간이었다. “켄.” “이른 아침에 찾아와 죄송합니다. 바로 이것들을 확보하여서요. 바로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민폐인 줄 알면서도 왔습니다.” “괜찮아요.” 잠이 오지 않아서 일찌감치 일어나 차를 마시고 있던 차였다. 나는 차를 따라 주기 위해 들어와 있던 멜로딘을 물리고, 켄이 가져온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낡아 보이는 다이어리들이 있었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듯 색도 바래 있었고, 여기저기 해져 있는 다이어리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건…….” “그자의 말을 들은 시종이 가져온 것입니다.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열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긴 하나…… 아마도 맞을 겁니다. 전 마탑주인 테슬로에게 들이밀었을 때 이게 맞다고 하였으니까요. 확인 후 가져왔습니다.” “그래요. 잠시 차라도 마실래요?” “아닙니다. 저는 이쪽에 서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켄은 방문 근처에 서서는 나를 바라봤다. 나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한 배려에 싱긋 웃은 나는 제일 오래된 것 같은 다이어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차를 천천히 마신 후 종이를 천천히 펼쳤다. 다이어리는 일기장이었다. 그 주인이 페픽트라 겔루스라는 걸 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맨 앞장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았으니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적혀 있던 다이어리 안에서 내가 원하는 걸 찾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이어리를 몇 개나 흘려보내고 나서야 내가 원하는 시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231년 1월 2일 레디악. 현존하는 모든 마법사 중에 제일 강한 분의 제자가 되었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부모님이 남겨 주신 모든 돈을 다 썼다. 후회는 없다. 나도 강한 마법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쓴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지.> 맨 처음 마탑에 들어왔을 때부터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일기였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자 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233년 3월 1일 나의 스승님께서 아이를 하나 데려오셨다. 이제껏 여러 아이를 봤지만, 이 아이는 이상했다. 아주 쓸모가 좋을 거라면서 데려온 아이. 강한 마력을 타고난 아이란다. 속으로 비웃었다. 강한 마력을 가진 아이일수록 더 빨리 죽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알려 주지 않았다. 속이 음흉스러운 게 느껴지는 듯,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스승님의 곁에 남은 쓸 만한 제자는 나뿐일 테니까. 나의 신, 나의 모든 것. 저는 저만이 당신 곁에 있길 바랍니다. 당신의 종이 되고 싶어요. 스승님은 너무나 빛이 나는 분이기에 자꾸 날파리들이 꼬인다.> 굳이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부분이 세헬루스, 아니 헬리온을 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냐면 뒤로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아이에 대해서 계속해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으니까. 그 후로도 며칠에 한 번씩 적힌 일기에는 다 그 아이가 죽으면 좋겠다, 꺼졌으면 좋겠다. 왜 안 죽는 걸까 라는 온갖 악담이 적혀 있었다. <233년 4월 19일 젠장. 헬리온 자식. 스승님의 연구에 그X가 꼭 필요하다고 한다. 이X만 있으면 더 이상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연구에 이X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굳이 이X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의 힘을 뺏으면 그만이지만, 선량하신 스승님께서는 다른 이들을 더 이상 희생시키기 싫으신가 보다. 이렇게 다정하신 분이 어디 있을까. 나의 스승님. 당신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 같습니다.> 미친X. 미친 인간들. 다른 사람의 힘을 뽑아 가짜 영생을 만들었다던 레디악. 그리고 그를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페픽트로. ‘드디어 등장한 헬리온의 이름까지.’ 일기를 보는 내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233년 8월 8일 재수 없는 헬리온 자식. 어린놈의 자식이 나의 신, 나의 스승님께 반항을 한다. 스승님은 그X 때문에 꽤 힘들어하시는 듯했다. 어떻게 하면 그X을 골탕 먹일 수 있을까 하다가, 그X을 자주 찾아오는 아이를 발견했다. 보육원 아이인 듯 꼬질꼬질한 아이였다. 스승님께 그 보육원 아이를 인질로 삼자 했다. 처음으로 스승님이 내 말에 따라 주셨다. 실제로 보육원 아이를 인질로 삼고 조금 학대하자, 재수 없는 X은 꼬리를 내렸다. 스승님께서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 주셨다. 페픽트라. 너는 나와 꼭 닮았구나. 그런 칭찬을 해 주셨다. 아아. 황홀하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들을 이용하라니. 그걸 자랑스럽게 스타베팅쓴 페픽트라나, 옳다구나 그렇게 한 레디악 X이나. 진짜 악 그 자체다. “개새……” 본능적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급히 다물었다. 켄은 내 목소리가 들리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듯했지만, 나는 나의 인간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이어리를 훑었다. <235년 11월 14일 벌써 겨울이 찾아온 건지 밖의 날씨가 너무 춥다. 재수 없는 X, 헬리온은 병든 닭처럼 매일매일 스승님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힘이 뽑혀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X과 친하게 지내던 보육원 아이들은 물론 모든 보육원의 아이들을 다 데려와 눈앞에서 죽이다 보니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걸 모르고 재수 없는 X은 아이들만은 제발 놔 달라고 했다. 평생 자신이 이용당해도 좋으니 아이들만은 놓아 달라고. 제가 대단한 존재라도 된 듯이 그러는 꼴이 우습다. 결국 그러겠다 하고선 재수 없는 X에게 봉인구를 채웠다. 마탑에서 나갈 수도 없게. 덕분에 스승님의 연구는 훨씬 편안하게 이루어졌다.>